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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한끼[제주노포탐방]

잊혀가는 제주 향토의 맛, 정의고을 꿩메밀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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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고을 꿩메밀국수 – 꿩 샤브샤브의 전설을 찾아~

 

네이버 지도

정의고을꿩메밀국수

map.naver.com

 

로컬의 자부심, 그 깊이를 맛보다

제주 제주시, 종합경기장 인근.
대형 체육시설 옆에 다소 소박하게 자리한 ‘정의고을 꿩메밀국수’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이곳은 꿩이라는 전통 식재료와 메밀이라는 시대를 관통한 곡물이 만나 제주 음식문화의 정수로 빚어낸 공간이다.

 

 

처음 이 식당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벽에 걸린 고두심 씨의 싸인 사진이다.
색이 바랜 그 한 장의 액자엔 단순한 유명인의 흔적 그 이상이 있다.
이곳이 얼마나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꿩 음식을 지켜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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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제주 식문화의 고집스러운 지킴이

 

꿩고기는 본래 귀한 재료다.
제주의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꿩은 겨울철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실질적인 생존 자원이었고,
공동체 사냥 문화인 '꿩사농'을 통해 지역의 유대감까지도 함께 끓여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꿩 요리를 여전히 다루는 곳은 이제 손에 꼽는다.
그 중에서도 정의고을은 단연 돋보인다.

이곳의 메뉴 중 오늘 선택한 것은 꿩 샤브샤브.

 

일단 국물이 남다르다.
흔한 샤브샤브의 맑은 육수와 달리, 이곳의 국물은 탁할 정도로 진하다.
이는 꿩 뼈를 오래 고아낸 결과다.


그 안엔 무, 파, 고추가 함께 끓여지며 깊고 진한 풍미를 만든다.
살짝 기름진 듯하면서도 텁텁하지 않고, 꿩 특유의 잡내가 전혀 없다.
이 국물 한 숟갈에, 이 집의 시간과 고집이 녹아 있다.

 

 

손질된 꿩고기, 그리고 직접 채취한 들나물의 향연

껍질을 정성스럽게 벗긴 꿩고기는 얇고 부드러우며 결이 고운 편이다.
껍질과 지방은 거의 제거되어 있어 고기 자체의 담백한 맛이 두드러진다.

 

또한 이 식당만의 특별함은 바로 채소에 있다.
사장님 내외가 직접 들에서 채취해온 제철 들나물들.
취나물, 곰취, 미나리, 쑥부쟁이, 곤드레 등 평소 쉽게 맛보기 어려운 산나물들이
정성스럽게 씻겨 한 접시에 수북이 담겨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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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채소들을 꿩육수에 데쳐 먹는 맛이란, 정말 독보적이다.
육수의 진함과 들풀의 씁쓸함, 꿩고기의 담백함이 삼중주처럼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그 어떤 향신료도 이 조합을 이길 수 없다.

 

정갈한 반찬, 그리고 마지막의 손반죽 메밀면

곁들여지는 반찬 또한 단아하다.
늙은 호박무침, 콩나물, 열무김치, 무말랭이 장아찌까지 어느 하나 과하지 않다.
심지어 식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고 있어 메인 음식과의 궁합이 절묘하다.

 

 

 

마지막엔 손으로 반죽한 메밀면이 등장한다.
짧고 뚝뚝 끊기는 투박한 면발.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제주의 메밀면의 진짜 모습이다.
젓가락보다 숟가락이 어울리는 면,
꿩 육수에 말아 한 입 떠먹을 때의 감동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무뚝뚝한 접객 속에 담긴 제주의 인심

이 집의 서빙을 맡은 사장님 남편은
전형적인 제주 어르신 스타일이다.
말수도 적고 다소 무뚝뚝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몇 번 왔다 간 단골이라면 안다.
그 속 깊은 정이 음식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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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고을, 그 이름처럼 ‘정의로운 고집’

이곳은 관광지 중심의 레스토랑도,
SNS에서 유행하는 핫플레이스도 아니다.
오로지 음식 하나로 수십 년을 이어온 진짜 '노포'다.
지금도 단골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돈 있다고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음식’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 식사는 단순한 외식이 아니었다.
잊혀가는 한 시대의 음식,
제주의 역사와 환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 한 끼를 온몸으로 받아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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