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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4월, 벚꽃 아래 되살아나는 비극의 기억

한 해의 봄이 찾아오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 제주도는 아름다운 꽃의 향연 속에서도 깊은 상처의 기억을 되새깁니다.
제주 4·3 항쟁은 해방 직후 이념 대립과 단독정부 수립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비극적 사건입니다.
7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특히 현재 윤석열 정부의 정치 행태를 바라보면, 권력 집중과 민주주의 훼손 측면에서 4·3 당시의 상황과 불길한 유사성이 감지됩니다.
이 글은 제주 4·3의 역사적 교훈을 상기하며 현재의 정치 현실을 성찰하고자 합니다. 모레(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는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깨어있는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닌, 옳바름을 세우지 못하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역사의 비극을 되짚어보며 현재를 바로 살아가는 지혜를 모색하고자 합니다.
제주 4·3: 해방공간의 비극, 섬에 드리운 이념의 그늘
1948년 4월 3일 새벽, 제주 섬의 산과 들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겨우 몇 년, 제주도민들은 또 다른 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향한 선거를 앞두고, "이 땅에 다시 독재와 분단을 심지 말라"는 절박한 외침이 제주에서 터져나왔습니다. 좌익계 게릴라와 이를 토벌하려는 군경 간의 무력충돌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총칼이 겨눈 대상은 무장대뿐 아니라 죄 없는 양민들이었습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고한 주민들이 이념의 올가미에 묶여 학살당했고, 아름다운 섬 제주 곳곳이 불타올랐습니다.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주민들은 빨치산이거나 그 협조자라는 누명을 쓰고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제주 4·3 항쟁은 그렇게 해방 공간의 찬란한 봄을 피로 물들인 비극으로 역사에 새겨졌습니다.

제주 4·3의 참혹상은 숫자로도 그 충격을 말해줍니다.
공식 추산으로 2만5천에서 3만여 명의 제주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중산간 마을 대부분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제주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4·3 사건 진압 과정에서 군·경은 적을 식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으면 무조건 폭도로 간주"된다는 포고문 아래, 산간마을 주민들은 존재 자체가 범죄가 되었습니다.
제주 4·3 항쟁 일지 (1947–1954)
날짜 | 주요 사건 |
---|---|
1947년 3월 1일 | 제주 북초등학교에서 열린 3·1절 기념 집회 도중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6명 사망, 수십 명 부상. 이를 계기로 제주도 전역에서 민·관 총파업 발생. |
1948년 4월 3일 |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약 350여 명이 새벽에 제주 전역 12개 경찰지서 중 11곳을 동시 기습, 제주 4·3 무장봉기 발발. |
1948년 5월 10일 | 제주 지역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거 실시 예정이었으나, 무장대 활동과 주민 반대로 제주 전체 200개 투표소 중 83%가 투표 불가. |
1948년 8월 15일 |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통령 이승만). 이후 제주 4·3 사태를 정권에 대한 반란으로 인식, 강경 진압 지시. |
1948년 10월 17일 | 9연대장 송요찬 소령, 중산간 마을 출입자 총살 포고령 발표. 중산간 지역 주민에 대한 소개령(강제이주령) 실시. |
1948년 11월 17일 |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 선포. 본격적인 초토화 작전 전개 – 1949년 2월까지 4개월간 군경 토벌대가 중산간 마을 대부분에 방화와 학살 자행. |
1949년 6월 7일 | 무장대 총책 이덕구 사살 – 남로당 무장대 조직 와해, 무력 충돌 사실상 종료. |
1950년 6월 | 한국전쟁 발발. 제주도에서 예비검속 시행 – 과거 4·3 관련 혐의자·요시찰인 등 수천 명 검거 후 집단 희생. |
1954년 9월 21일 | 한라산 금족 지대 해제 – 제주 4·3 사건 공식적으로 종결. 사건 발단 이후 7년 7개월만. |
※ 제주 4·3 항쟁의 주요 사건 타임라인
토벌대는 마을을 불태우며 주민들을 쏘아 눕혔고, 살아남은 자들은 산으로, 동굴로 몸을 숨겨야 했습니다.
"무장대 토벌"이라는 명분 아래 진행된 학살은 마치 제주섬 전체를 전쟁터로 만든 듯했습니다. 태중의 아이부터 노쇠한 어르신까지, 심지어 피난민과 억류된 포로까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참혹한 진실은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야 했습니다.
4·3 이후 들어선 이승만 정권과 이어진 군부 독재정권은 제주 4·3을 금기어로 만들었습니다.
공권력에 의해 가족을 잃은 이들은 울분조차 토해낼 수 없었습니다. '빨갱이 섬'이라는 멸시와 낙인 속에 제주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4·3의 상처는 그렇게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했습니다.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처럼, 제주의 4·3도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5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증언들이 쌓이고 기록이 모아져 마침내 2000년대에 공식 진상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2003년 국가 보고서 채택과 대통령의 사과로 비로소 국가 폭력에 대한 늦은 인정과 위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세대를 건너온 한(恨)은 쉬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희생자 유족들은 여전히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나야 했는지 묻고 또 묻습니다.
권력의 민낯: 윤석열 정부를 보는 역사적 거울
2020년대의 대한민국은 형식적으로는 완전한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펼쳐진 정치의 풍경은 많은 이들에게 데자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권력의 속성, 특히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욕망 앞에서 역사는 나선형을 그리며 반복되는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직 검사 출신답게 법과 원칙을 내세운 통치를 표방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켰습니다. 그의 집권 1년이 지났을 때 일부 언론은 "검찰공화국의 완성"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정부의 중요 자리에 검찰 출신 인사들이 대거 기용되었고, 이는 권력의 균형과 견제 측면에서 우려를 낳았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가장 많이 들린 단어 중 하나는 "법치"였습니다. 전임 정부의 "무법"과 "내로남불"을 비판하며 등장한 정권인 만큼, "법대로 하겠다"는 선언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법치인가?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함에도, 현 정부의 법 집행은 선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거대 야당 대표를 향한 전방위 수사,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조사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초기의 숙청 작업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반면 권력 실세나 대통령 자신과 가까운 인물들에게 제기된 의혹 사건들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야당에서는 "정적 제거를 위한 정치 수사"라고 반발했고, 여당은 "적폐 청산의 마무리"라고 맞섰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에서 또다시 광장의 분열이 나타난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은 과거 검찰총장 시절 "민주주의 허울 쓴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정권을 비판하던 입장에서 한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이제 대통령이 된 그의 운명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스웨덴의 V-Dem 연구소는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지표에서 한 단계 강등되었다고 지적하며, 정부가 반대 세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현상을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임기 첫해부터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을 꺼리는 모습을 보였고, 주요 쟁점에서 협상보다는 거부권 행사나 사정기관 동원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법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을 채우는 정신은 관용과 타협보다는 힘과 응징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법치는 법의 이름을 빌린 검사의 통치"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 제도를 갖추고도 민주주의의 내용물은 비어가고 있다는 통렬한 지적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이승만 vs. 윤석열, 반복되는 권력의 논리
역사는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1948년의 대한민국과 2025년의 대한민국은 정치 체제도, 국민 의식도, 국제 환경도 크게 다릅니다. 그러나 권력의 논리라는 측면에서 묘한 공통점이 떠오릅니다.
제주 4·3 당시 이승만 정권(그리고 그 이전의 미군정)은 남로당과 그 동조 세력을 국가 전복의 위험으로 간주했고, 이를 진압한다는 미명 아래 제주 주민 전체를 적으로 돌렸습니다.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공포 정치도 불사한 것입니다. 반세기 넘게 흐른 지금, 윤석열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다른 대상, 비슷한 논리가 엿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이번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종북 좌파', '전 정권 적폐' 등이 새로운 내부의 적으로 규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막강한 검찰권과 행정력이 총동원됩니다. 물론 두 시대의 결과는 현재 시점까지는 극과 극입니다. 4·3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이 총탄에 쓰러졌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최소한 물리적 폭력보다는 제도와 여론의 투쟁으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와 과거: 제주 4·3과 윤석열 정부 비교
비교 항목 | 제주 4·3 (1947–1954) | 윤석열 정부 (2022–현재) |
---|---|---|
역사적 배경 | 일제 해방 직후 냉전 초기. 좌우이념 대립 격화. 미군정 통치하 남한에서 단독정부 수립 시도. 제주 지역은 좌익 세력 강하고 경찰 폭정에 반감 높음. | 민주화 35년이 지난 한국. 경제발전과 정보화로 국민의식 성장. 그러나 진보·보수 진영 간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이전 정부 적폐청산 과정의 후유증 존재. |
사건/정국의 발단 | 3·1절 발포사건으로 민심 악화. 남한만의 단독선거 강행에 반발. 남로당이 무장봉기 결정. | 2022년 보수 정권 교체. 윤석열 정부, 적폐청산 역행 및 검찰권 강화. 야당 대선후보 수사 등 갈등 고조. (탄핵·퇴진 요구 집회까지 등장). |
권력자의 논리 | 이승만 정권: 공산주의 폭동 진압, 국가 안보·질서 회복 명분. 미군정 지원 아래 강경책. 희생은 부수적 피해로 간주. | 윤석열 정부: 법치주의 수호, 종북·부패 세력 척결 명분. 검찰·경찰 동원한 사정정국. 민주주의 논란에도 "자유 수호" 강조. |
탄압의 형태 | 군경 계엄령, 초토화 작전, 무차별 학살. 민간인 2~3만 명 희생. 주민들 투옥·고문, 마을 강제이주. 언론 검열 및 사건 은폐. | 사법·행정 권력 활용한 압박. 야당 정치인, 언론인, 시민단체에 대한 수사·기소. 집회 시위 엄격 대응 (정권 초기 화물연대·노조 파업에 강경). 물리적 학살은 없으나 민주적 권리 위축. |
대중의 반응 | 제주 주민 상당수 봉기에 동조 혹은 협조. 그러나 대규모 학살로 공포 확산, 이후 침묵 강요. 국내 다른 지역은 정보 차단으로 무관심. | 야당 지지층 및 시민사회는 강력 반발 (촛불집회 등), 여당 지지층은 환호하며 결집. 국민 여론 양극화 심화.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후퇴 우려 표명. |
결말/현재 상태 | 4·3 봉기는 1954년 진압 완료. 사건 오랜기간 왜곡·은폐. 2000년대 진상규명과 사과로 일부 해결됐으나, 가해자 처벌 거의 없음. 후유증 지속. | 윤석열 정부 임기 중 (현재 진행형). 향후 선거 및 사법 절차에 따라 권력남용에 대한 심판 가능성. 민주주의 지표 하락 등 이미 타격 존재. 역사적 평가 대비 중. |
※ 위 비교는 두 사건/정국의 상황을 개략적으로 대비한 것으로, 시대적 배경 차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격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권력을 쥔 자가 반대자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도덕성과 정당성 모두 자신들에게만 있다는 태도를 보일 때, 사회는 급속히 양극화되고 민주주의는 부서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제주도를 토벌할 때 내건 명분은 질서 회복과 자유세계 수호였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강경 통치를 정당화할 때 내세우는 것도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법질서 확립입니다. 명분은 언제나 고상합니다.
벚꽃 흐드러진 제주의 봄, 그 아래 흐르는 눈물

한라산 자락 아래, 제주의 도로변에는 분홍빛 벚꽃터널이 만개했습니다.
사진 속 제주도의 봄날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새하얗고 연분홍의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그 사이를 관광객 실은 자동차와 버스들이 분주히 오고 갑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꽃비 내리는 풍경을 찍고 웃음을 터뜨립니다. 제주 섬은 마치 동화 속 봄의 나라처럼 보입니다. 따뜻한 남쪽 섬의 3월 말, 설렘과 축제의 공기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벚꽃잎이 떨어져 쌓이는 그 땅 밑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유해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비석들은 제주4·3평화공원의 희생자 추모비로, 옷만 새겨진 형상이 마치 사람이 사라지고 없음을 상징합니다. 화창한 하늘 아래 서 있는 검은 비석들은 75년 전 이 섬에서 벌어진 일을 묵묵히 증언합니다.
꽃구경을 온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추모비 주변의 공기는 유난히도 숙연합니다.
벚꽃나무 아래에서 아이와 손잡고 걷는 한 가족의 모습이 보이지만, 바로 곁에 새겨진 이름들 중 어떤 이는 그 아이보다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주의 봄은 이렇게 환희와 비극이 교차하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습니다.
벚꽃은 해마다 피지만, 그 꽃잎이 떨어질 때 제주 사람들은 피로 물든 4월을 기억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바퀴 아래 밟히는 꽃잎들은 혹여 눈물에 젖어 있는 건 아닐까요. 한쪽에서는 "봄이다, 축제다" 환호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고 절규하는 듯합니다.
관광 안내책자는 제주를 낭만의 섬이라 소개하지만, 정작 제주도민들의 가슴속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의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극단적인 대비는 오늘 우리가 반드시 목격해야 하는 진실입니다. 즐거움과 슬픔, 기억과 망각이 공존하는 제주의 봄 풍경은 역사의 아이러니 그 자체입니다. 화사한 벚꽃 아래 숨죽인 영령들의 한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역사적 정산 없이는 미래도 없다: 반복되는 국가폭력의 그림자
제주 4·3 항쟁의 비극은 단순히 과거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 청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현재진행형의 교훈입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4·3의 진실이 수십 년간 묻혔던 대한민국은 그 대가를 치르듯 반복되는 폭력의 고리를 경험해 왔습니다.
1960년대, 1970년대 군부독재 하에서 광주 5·18민주화운동까지, 국가권력은 필요할 때마다 국민을 향해 칼을 빼 들었습니다. 민주화 이후 그런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믿었지만, 2020년대의 오늘에도 우리는 권력의 오만과 폭주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제주 4·3을 제대로 청산하고 가해자들을 단죄하지 못한 역사, 나아가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적폐를 뿌리 뽑지 못한 대가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합니다.
윤석열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단지 정권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닙니다. 어떤 불길한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들 때, 그 끝에 무엇이 오는지 우리는 배웠습니다. 총과 칼로 국민을 제압했던 이승만의 말로(末路)가 어떠했으며,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전두환 군부정권이 국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음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역사의 경고를 무시한다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 만큼 발전했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토대도 탄탄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결국 그 껍데기가 아니라 내용입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와 존엄을 누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목적입니다. 제주 4·3은 국가가 그 존엄을 부정하고 폭력을 휘둘렀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는지 보여줍니다. 윤석열 정부를 포함한 현재의 어느 권력자도 4·3의 교훈 앞에서 겸허해야 합니다. 어떤 대의명분도 국민의 생명과 권리보다 우선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4·3 유족들의 평균 연령은 이제 80을 넘겼다고 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사과보다 책임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역사 정산이란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두 번 다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정치는 여전히 과거의 망령과 싸우고 있습니다. 친일 청산의 미완으로부터, 4·3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미완으로부터, 군사독재 청산의 미완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긴 그림자가 남아 있습니다.
만약 이 역사의 흐름을 지금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도 언젠가 벚꽃 흩날리는 어느 날에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할지 모릅니다. 그것이 대규모 학살의 형태가 아닐지라도,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내란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는 사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제주 4·3은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에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역사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가? 권력자는 그 무게를 견뎌낼 도덕적 책임감을 지니고 있는가? 대답을 회피한다면 역사는 언제라도 엄혹한 시험을 낼 것입니다.
맺음말: 기억하고 행동하는 우리, 역사의 질문에 답하다
역사의 비극은 대개 권력자의 오만과 편견에서 잉태된다. 제주 4·3은 해방된 조국 땅에서 다시 피어난 폭력의 꽃이었다. 그 꽃은 총검과 함께 활짝 피었고, 수만 명의 이름을 유령으로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민주주의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권력의 속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정부 아래서 우리는 또 다른 불온한 꽃이 피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운 마음으로 묻게 됩니다. 그 꽃의 이름은 독선이며, 향기는 분열이고, 열매는 권위주의의 부활일 것입니다.
벚꽃 흩날리는 제주의 봄날, 우리는 환희와 슬픔이 교차하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한 손에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성취가 들려 있지만, 다른 한 손에는 미완의 역사 청산과 반복될지 모를 폭력의 위기가 쥐어져 있습니다. "설마 또 그런 일이 있겠어?" 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싶지만, 역사는 언제나 우리가 방심한 틈을 파고듭니다. 4·3의 영령들이 남긴 피 맺힌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똑같은 시험지를 다시 내밀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는 역사 앞에 선 책임 있는 시민입니다.
정부의 정책에 박수를 보내든, 규탄의 촛불을 들든, 중요한 것은 4·3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는 일입니다.
권력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근본입니다. 만약 권력이 자신이 곧 법이고 정의라 착각한다면, 우리는 1948년의 제주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다시는 그런 비극을 용납하지 않겠노라고.
마지막으로, 제주 4·3에서 산화한 영혼들과 유가족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그들의 한맺힌 침묵과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현재를 사는 우리는 눈을 뜨고 권력을 감시할 것입니다. 봄바람에 벚꽃이 날릴 때마다, 우리는 분홍 꽃잎이 아닌 붉은 피의 기억을 함께 떠올릴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미래로 나아가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
어둠은 빛으로만 몰아낼 수 있고, 거짓은 진실로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제주 4·3의 진실과 현재의 교훈이 우리의 나아갈 길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봄, 제주는 또다시 벚꽃으로 뒤덮였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4월 3일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행동함으로써 비로소 과거의 희생에 보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계속 질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답할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참고 자료
- 제주4·3사건(濟州四三事件)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제주 4.3 평화재단, 《제주 4.3 70년》
- 2003년 정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 경향신문, "윤석열 정부 1년 - '개혁대상'에서 '정권의 호위무사'로···그들만의 검찰공화국"
- 오마이뉴스, "한국, 2년 연속 독재화...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탈락"
- V-Dem Institute, "Democracy Report 2023"
- 한국경제, "민주주의 허울 쓴 독재 文 겨냥?…윤석열 사흘째 침묵"
- 민족문제연구소, "단독 법원통신망에 '제주 4.3은 좌익폭동'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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