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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주는[제주소식통]

제주 왕벚꽃....그리고 4.3

by 돌쇠마씸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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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피의 섬, 제주

지금 제주는 왕벚꽃이 만개하는 계절입니다.

하얀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관광객들은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75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처참한 비극의 기억이 숨겨져 있습니다. 4월 3일이 다가오면서, 제주는 또 다른 얼굴, 즉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4.3항쟁의 아픔을 기억합니다.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의 제주와 7만여 섬 주민 중 최소 25,000명이 희생된 학살의 제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 역사의 이중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성찰하게 합니다.

 

오늘 저는 제주 4.3의 역사적 진실과 그것이 현대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정리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경고를 가슴에 새기며, 과거의 비극이 현재와 미래에 주는 교훈을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제주 4.3항쟁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

제주 4.3항쟁은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 아닌, 해방 이후 한반도의 복잡한 정치 상황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 비극입니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이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 속에서 분단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안을 둘러싸고 좌우익 간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는 제주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음은 제주 4.3항쟁의 주요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날짜 사건 의미와 영향
1947.3.1 3.1절 발포사건 6명 사망, 8명 부상. 제주도민의 분노 촉발
1948.4.3 무장봉기 발생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의 봉기, 항쟁 본격화
1948.5.10 남한만의 단독선거 제주도 2개 선거구 중 1개 무효, 항쟁 격화
1948.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승만 정부 출범, 제주 항쟁 '폭동'으로 규정
1948.10.19 여순사건 발생 제주 진압을 위해 파견된 14연대 반란
1948.11.17 제주도 계엄령 선포 본격적인 초토화 작전 시작
1948.11~1949.3 초토화 작전 중산간 마을 95% 소각, 대규모 민간인 학살
1949.6.10 무장대 지도부 궤멸 항쟁 사실상 종식, 잔여 무장대 토벌 지속
1954.9.21 한라산 금족 해제 4.3 이후 6년 만에 한라산 출입 허용
2000.1.12 4.3특별법 제정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첫 법적 조치
2003.10.31 노무현 대통령 공식 사과 국가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
2014.3.24 4.3희생자 추념일 지정 국가기념일로 지정

 

 

1947년 3월 1일, 제주에서 열린 3.1절 기념행사 중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민의 분노가 고조되었고, 미군정의 강경 대응과 탄압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는 단독선거 반대와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미군정과 이후 수립된 이승만 정부는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1948년 10월 여순사건 이후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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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항쟁의 본질: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

제주 4.3항쟁의 본질은 무장대와 토벌대의 단순한 대립이 아닌, 국가권력에 의한 조직적 민간인 학살입니다.

토벌대는 무장대 진압이라는 명목 하에 '빨갱이 소탕'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사실상 제주도민 전체를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열 명의 양민이 죽어도 한 명의 폭도를 사살하라"

 

위 토벌대의 지침은 국가폭력의 무차별성을 보여줍니다.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주민들이 체포되어 재판 없이 즉결처형되었고,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산으로 피신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학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대량학살'의 방식이었습니다. 대정읍 '백조일손지지'에서는 하루아침에 132명의 주민이,  북촌리에서는 400여 명의 주민이 한꺼번에 학살되었습니다. 이러한 대량학살은 제주 전역에서 자행되었으며, 그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백조일손지묘

 

희생자 유형별 분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민간인 희생자: 약 25,000~30,000명
  • 무장대 사망자: 약 1,000~2,000명
  • 토벌대 사망자: 약 180~300명

학살 방식은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 집단 총살: 55%
  • 태형 및 고문사: 15%
  • 화형(소각): 10%
  • 기타(익사, 교수형 등): 20%

4.3희생자 분포도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국가폭력의 기억이 오랫동안 금기시되고 억압(연좌제)되었다는 점입니다.

4.3 희생자와 유족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그들의 아픔은 반세기 넘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갈등과 국가폭력의 연결고리

제주 4.3의 역사는 정치적 갈등이 어떻게 국가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입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신탁통치 찬반을 둘러싼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이념적 대립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해방 이후 한반도의 미래를 둘러싼 정치적 주도권 다툼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반공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정치적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규정하고 탄압했습니다.

제주도민의 저항은 공산주의 확산이 아닌, 분단에 반대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염원하는 민족적 열망의 표현이었으나, 이는 철저히 왜곡되고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정치적 갈등이 극단화될 때 국가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기구를 동원하여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제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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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사회와 4.3의 교훈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치적 갈등 양상은 과거 신탁통치 논란 시기와 많은 유사점을 보입니다.

다음은 과거와 현재의 정치적 갈등을 비교한 것입니다:

구분 과거(1947-48년) 현재
이념적 대립 신탁통치 찬반, 좌우대립 진보-보수 갈등, 이념 양극화
국제적 맥락 냉전 초기, 미소 대립 신냉전 구도, 미중 경쟁
정치적 담론 반공주의, 적대적 이념 대립 적대적 정치 담론, 상대 진영 악마화
국가기구의 활용 경찰, 군대의 정치적 활용 검찰, 사법부 등 권력기관의 정치화 우려
민주주의 상태 형성 초기, 취약한 민주주의 제도화된 민주주의, 그러나 내용적 취약성

 

두 악마의 유사성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치적 갈등이 심화될 때 국가권력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때, 권력자들이 통수권을 이용하여 군대나 경찰 등 국가기구를 동원하려는 유혹은 항상 존재합니다. 이승만 정부가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규정하고 학살했던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도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담론이 확산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4.3의 역사는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경고입니다.

정치적 갈등이 아무리 첨예하더라도, 그것이 국가폭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반대자는 제거의 대상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상대여야 합니다.

 

진실과 화해의 과정

제주 4.3의 진실은 오랫동안 억압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되었고, 2000년 4.3특별법 제정,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 2014년 4.3희생자 추념일 지정 등의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화해와 치유는 아직 진행 중인 과제입니다.

일부 희생자와 유족들은 여전히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했고, 4.3의 역사는 교과서에서도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진정한 화해는 진실에 대한 인정, 책임 있는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모두 갖추어질 때 가능합니다.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한 우리의 책임

제주의 봄은 아름다운 왕벚꽃과 함께 4.3의 아픈 기억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이 대비되는 이미지는 우리 역사의 이중성을 상징하며, 동시에 미래를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정산되지 않고, 정리되지 않으며,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됩니다.

제주 4.3의 진실이 반세기 넘게 억압되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상처들이 제대로 직면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미해결의 역사는 언제든 현재의 갈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비극을 낳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주 4.3을 통해 국가폭력의 위험성과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배웁니다.

동시에 진실과 화해, 그리고 정의 없이는 진정한 사회적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교훈도 얻습니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는 현재의 정치적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나가야 합니다.

 

벚꽃이 흩날리는 제주의 봄,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숨겨진 아픈 역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지혜를 얻습니다.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4.3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역사의 반복을 막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1. 제주4.3평화재단 (2018).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 제주4.3평화재단. https://www.jeju43peace.or.kr/
  2. 제주4.3연구소 (2015). 제주4.3의 역사적 진실. 서울: 역사비평사.
  3. 김동만 (2019). "제주4.3과 국가폭력의 메커니즘". 한국현대사연구, 89(2), 35-62.
  4. 양정심 (2015). 제주4.3항쟁의 정치사회적 배경 연구. 서울: 선인.
  5. 허호준 (2013). 침묵의 세월: 제주4.3 증언록. 제주: 도서출판 각.
  6. 제주특별자치도 (2022). 제주4.3 74주년 백서. 제주: 제주특별자치도.
  7. 제주4.3평화공원 홈페이지 www.jeju43peace.or.kr
  8. 국가기록원 (2019). 제주4.3사건 관련 자료집. 대전: 국가기록원.
  9. 제주4.3희생자유족회 (2018). 4.3은 말한다: 생존자와 유족의 증언. 제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
  10. 김창후 (2017). "제주4.3의 진실과 화해 과정에 대한 비판적 고찰". 평화연구, 25(1), 123-150.
  11. 다큐멘터리 영화 '지워진 역사'

 

이미지 출처: 제주4.3평화공원 제공

작성일: 2025년 3월 31일

최종 수정일: 2025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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